쥬라기 섬의 각 종족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에 저마다 지쳐가고 있었다. 누구도 주도권을 잡지 못
한 채 소모와 악순환만을 거듭하는 전쟁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와 타당성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되어버
린지 오래였다. 티라노족과 엘프족, 원시인족에서는 한 치의 미래도 예측 불허인 칠흑 같은 죽음의 소
용돌이 속에서 염증을 느끼고 이탈하는 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 수가 점점 늘어나 중앙집권적
족장체제에 위협이 되어갔다. 그처럼 각 부족의 내부에서는 힘의 균열이 생겨나고 있었으나 그에 반
해 외부의 전쟁은 더욱 치열하고 첨예해져 갔다. 그들 각 종족의 이념 속에서는 타 종족과의 타협이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으며, 서로를 향한 증오심과 혐오는 이미 그만큼 극단적인 성향으로 발전
해 버린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전쟁은 점점 더 심화되어갈 뿐이었다. 그 가운데 좀처럼 어느 한
종족에게도 당장에 전쟁의 대세가 기울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음씨 착한 로메크 부족의 레인저는 원시인들 곁에 대다수 남아있었지만 몇몇은 엘프인들과 함께 숲
으로 들어가 살기도 한다. 그러나 워락 마법사들은 달랐다. 그들은 마음이 사악하여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원시인들 겨냥해....
그러나 현명한 엘프족의 여왕이었던 젤리거는 점차 전쟁의 판도가 바뀌게 될 것을 미리 염려하였다.
앞으로 생명체로서 개개인의 의지를 가진 종족인 티라노, 원시인, 엘프족 내부의 균열은 심화되어 갈
것이나 그에 반해 데몬족의 군사들은 이미 죽은 자들의 소환이기 때문에 개개의 의지가 존재하지 않으
므로 내부의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또한 데몬족은 사악한 영적
에너지에 의해 움직이도록 되어있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고통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종족들이
전쟁으로 인해 지쳐가는 것과는 달리 파괴와 살상으로 인해 그들의 힘과 에너지가 더욱 강해져 가고
있었다. 젤리거는 가장 큰 전쟁의 변수는 데몬족이라 규정 짓고, 나머지 세 종족은 앞으로 현 상태에
서 살아남기 위해서 더욱 강해질 데몬족에게 힘을 합쳐 대항하여 한다는 뜻을 역설했으나, 현실에 급
급한 원시인족과 티라노족은 젤리거의 말을 무시하며 배척하였다. 젤리거는 매우 상심하여 엘프족이
멸망할 것에 대비해 몇몇의 고위 엘프들과 마법사를 동원하여 부활 마법을 봉인하는 방안을 연구하려
니스 숲 깊은 곳의 홀리 템플로 잠적했다. 내부 왕권은 젤리거의 둘째 딸 시오렌에게 승계되었고 모두
가 그녀의 온화한 성품이 부족내 균열을 다시금 회복시켜 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미 전쟁에 진력
이 나 있던 몇몇의 엘프와 왕위 계승권에서 밀려난 젤리거의 큰 딸 키아나는 젤리거를 등지고 떠나버
렸다.
한편 섬에는 새로운 손님이 한 명 찾아온다. 그 노파는 섬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조금 작은 날개를
지닌 여자들 무리와 함께 얕은 물을 건너 엘루보아 섬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베일을 쓴 늙은 노파가 누
구인지도, 조금 작은 날개를 지닌 그 여자들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단지 분명한 것은 이 무리들
이 엘루보아에 들어간 후 데카가 사라졌다는 소문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데몬족의 침략도 중단되었다
는 사실 뿐이다. 데몬족의 침략이 중단되자 쥬라기 섬에는 역시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는 했으나, 잠
시 동안의 평화가 찾아왔다. 많이 피폐해진 세 종족은 뒤늦게 내부 균열들을 막고자 했으나 이미 쥬라
기 섬에 불씨는 던져졌고 그 불을 끄기에는 늦은 듯 했다.
이제 네 종족은 불꽃처럼 멸망과 끝을 향해 치닫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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