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는 순정만화를 남성들이 보기 힘든 만화라고 생각한다. 순정만화에 등장하는 긴 다리와 부드러운 머릿결을 가진 남성 캐릭터들을 보고 있자면 김치를 한 포기를 먹어도 해소가 되지 않을 정도로 느끼함이 밀려오기 때문. 하지만 그런 것도 가끔씩은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 다른 이성의 감성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될 것이고, 평소에 보는 과격한 만화들과 다른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깐.

이렇게 생각되는 남자들에게 권할만한 순정만화, 그것도 조금 독특한 책이 출간됐다. 생활 시뮬레이션이라는 독특한 장르로 출시 후 지금까지 전 세계 약 9천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윌 라이트의 ‘심즈’ 게임을 이용, 순정만화로 표현한 ‘티미&마리’가 그것이다. 물론 표지에 있는 긴 여성과 남성 캐릭터를 보고 있자면 살짝 책을 덮고 싶지만 그래도 게임과 순정만화의 만남은 나름 순정만화가 남자들에게 주는 거부반응을 살짝 없애주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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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에서 온 소년과 시골에서 온 소녀

순정만화 ‘티미&마리’는 순수하면서도 상처 받는 사랑에 두려워하는 시골 소녀 ‘마리’와 건방지고 사교성은 제로에 가까운 딱딱한 도시 소년 ‘티미’의 만남에 대해 그린 작품이다. 이 만화는 '몽마르뜨 언덕'과 '실키&리오'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이명신 작가(필명 바빌로니아)가 쓴 만화로 물 흘러가듯 부드러운 전개와 모나지 않은 스토리라인, 영화는 보는 듯 한 화면 구성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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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성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흔한 순정만화의 틀 속에서 진행되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캐릭터의 감성을 시기 적절히 표현해, 다른 만화와는 사뭇 다른 감성을 느끼게 한다. 또한 이야기의 전개 자체가 부드럽고 빠른 편이라서 캐릭터 소개에 페이지를 다 쓰는 일반적인 만화와도 차별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만화 속에는 적절한 코믹스러운 요소도 들어있을 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만화 속에서 이런 감성에 대한 부분을 독자들에게 풀어주는 역할은 초반 ‘마리’의 짝사랑 빌리를 시작으로 감초 같은 역할의 ‘로니아’ ‘러브듀잇’ ‘맥컬리’ 부인들이 해준다. 이들은 자칫 끊어질 수 있는 감성에 대한 이해를 톡톡 던지는 듯한 재미있는 표현으로 이어주고 있다.

그리고 독백 위주로 이어지는 ‘마리’의 생각은 차분하게 느껴지는 호수처럼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 이게 게임 화면? 눈을 휘둥그레 만들어주는 장면들

이 순정만화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심즈2’ 게임을 활용한 만화 속 장면들이다. 이 장면들은 이명신 작가가 직접 연출하고 꾸며서 찍은 장면들로 게임 장면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며, 그리고 멋지다.

특히 만화 속 장면, 장면에 들어 있는 다양한 아이템들은 작가를 비롯해 ‘심즈’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이 만든 창작 아이템으로 ‘심즈’의 또 다른 장점을 엿보게 한다. 이 중 눈에 띄는 건 서구적인 느낌이 강하게 드는 ‘티미’의 방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마리’의 방. 일부 아이템은 ‘심즈’ 게임 속에서 존재하는 아이템이기도 하지만 이곳에 사용된 많은 아이템들은 직접 만든 아이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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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오리지널 ‘심즈’ 캐릭터와 확연히 다른 만화 속 캐릭터들은 ‘심즈’가 가진 확장성이 얼마나 무궁무진하지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심즈’ 커뮤니티 사이트나 카페에서는 자신들이 직접 만든 캐릭터들을 활용해 멋진 스크린샷을 올리는 마니아들이 상당히 많으며, ‘티미&마리’처럼 스토리를 넣어 만화처럼 올리는 예비 작가들도 종종 눈에 띈다.

물론 ‘심즈’를 설치하기만 해서 당장 이명신 작가처럼 멋진 장면을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심즈’는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빠져들 수 있는 매력을 가진 게임이니 차분하게 즐겨본다면 자신만의 ‘심즈’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심즈’를 활용한 만화 ‘티미&마리’, 또 다른 시작을 낳는다

‘심즈’를 활용한 만화 ‘티미&마리’는 게임을 이용한 만화의 첫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부족한 부분들이 많이 있기 마련. 일부 스크린샷이 조금 장면과 어울리지 않거나 게임이기에 표현하기 어려운 얼굴의 감정, 인물들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등이 단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티미&마리’가 보여준 시도는 만화 이상의 여러 가치를 가졌다. 게임을 활용한 색다른 시도라는 점과, 새로운 원소스 멀티 유즈 콘텐츠라는 점, 게임이 문화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 등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만약 순정만화에 대한 거부 반응이 있거나 ‘심즈’라는 게임에 대해 접할 기회가 없었다면 ‘티미&마리’를 통해 한 번 접해보는 것이 어떨까. 분명한 건 이 만화가 이런 거창한 특징들을 제외하더라도 재미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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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edvi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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